메모

일기

voider 2020. 8. 31. 14:33

 신세경은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퇴보할 수 있다고. 시대에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이 옳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스스로 퇴보할 것이라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어떤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을지를 고민하고, 또 틀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언가를 선택해보려는 시도는 어딘가 감동적이다. 이건 어떤 훌륭한 이야기의 결말 같다. 옳다고 믿고 선택한 일이, 후에 잘못된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물러서는 이야기. 그렇게 다시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잠깐 움크리고 있다가, 결국엔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이야기. 스탠 바이 미의 꼬마들처럼.

 

  난 매일 쓰는 인간이었다가, 거의 매일 쓰는 인간이었다가, 가끔 쓰는 인간이었다가, 이제 거의 쓰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여기서 '-되었다'는 표현은 어딘가 비겁한 느낌이다. 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선택한 것인데. 무언가를 쓰지 않아서 좋은 점은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난 일로써 글을 써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날마다 그런 생각에 쫓겨서 살았던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아서 좋지 않은 점은 찝찝하다는 것이다. 쓰지 않으면 그나마 썼던 것도 서서히 녹슬 것이라는 걱정. 예전에 쓰면서 알게 되었던 것들에 멈춰서 더 이상 무언가를 탐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게으름에 대한 걱정. 이미 알고 있다는 게으른 생각. 그리고 도태될 것이라는 걱정까지. 쓰지 않으면서 변한 것은 잘 읽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잘 쓰고 싶어서 열심히 읽었는데 목적을 상실하니 과정도 사라졌다. 잘 쓰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쓰지는 말고 읽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좋아했는데. 어쩌면 나는 좋아하고 싶었던 것이지 좋아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좋아했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계속 했을 테니까.

 

 이제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다. 올해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나는 그게 마음에 든다. 쓰고 읽고 보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는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홀라당 빠져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것과 관련된 책만 읽는다. 낯설고 생소한 세계에 이제 막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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